계시록
실종 사건의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는 목사와,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실종 사건 담당 형사가 각자의 믿음을 쫓으며 벌어지는 이야기
평점
-
감독
연상호
출연
류준열, 신현빈, 신민재

 

연상호 감독의 신작 <계시록>은 신의 계시를 맹목적으로 믿는 목사와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힌 형사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이라는 단어가 지닌 양면성과 그 위험성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류준열, 신현빈, 신민재 세 배우의 강렬한 연기와 예측 불허의 스토리 전개로 몰입감을 선사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맹신적인 믿음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욕망과 믿음의 위험한 공존 : 성민찬의 타락

영화의 중심에는 평범했던 개척교회 목사 성민찬(류준열)이 자리한다. 아내의 외도로 고뇌하던 그는 새로 지어지는 건물의 담임목사 자리를 제안받은 후 욕망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그의 자녀가 실종되는 헤프닝에 있어서 가장 먼저 권양래(신민재)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우발적인 사고의 결과로써 권양래를 다치게 한 성민찬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자 '계시'라는 환상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그의 왜곡된 믿음은 점차 강화되고, 자신의 욕망을 신의 뜻으로 포장하며 광기 어린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이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쉽게 그릇된 믿음을 만들어내고, 그 믿음이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신아영 기도회 장면에서 신도들이 진실과는 상관없이 맹목적인 믿음만을 외치는 모습은 이러한 위험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트라우마와 정의 사이의 갈등 : 이연희의 딜레마 

한편, 강력반 형사 이연희(신현빈)는 과거 동생을 잃은 트라우마와 범죄자에 대한 깊은 분노를 안고 살아간다. 여중생 실종 사건을 수사하던 중 과거 동생 사건과 연루된 권양래와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그녀의 내면에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초기 설정에서 이연희는 권양래에게 동생을 희생당한 분노와 가장 아플 때 구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강한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권양래에게 동생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믿음에 가까운 열망으로 동생의 환각을 지속적으로 보고 그 과정에서 정신과 약까지 복용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초기 설정이었던 복수심과 죄책감이 아닌, 신아영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주요 동기로 부각되면서 조금 집중이 떨어지는 부분이 아쉬웠다. 물론 위기에 처한 아이를 구하려는 그녀의 노력은 정의로운 형사의 모습이지만, 과거의 상처와 연결된 감정선이 더욱 섬세하게 그려졌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믿음의 이름으로 포장된 광기 : 영화가 던지는 질문

<계시록>은 흥미로운 스릴러 영화를 넘어, '믿음'이라는 개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대상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믿음이 왜곡되거나 맹신으로 변질될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성민찬의 광적인 믿음, 신도들의 맹목적인 추종, 그리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힌 이연희의 집착적인 추적은 모두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다. 특히 결말부에 등장하는 교수님의 말처럼, 겉으로 보이는 믿음의 방향은 다를지라도 그 내면에는 동일한 인간의 불안과 욕망이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부분은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깊은 몰입감과 메시지 

결론적으로 영화 <계시록>은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류준열의 감정선에 충분히 녹아들며 즐기듯이 보았다. 이 영화는 왜곡된 믿음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우리 스스로의 믿음을 되돌아보게한다. 비록 일부 캐릭터의 감정선 묘사와 같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전체가 던지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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